독일에 나체 촌이 있다하여 가 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게으른 소치 혹 또 다른 이유로 들리면서도 여태 못가봤다. 언제 한번은...
가보고 온 이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 같은 양반은 못 갈 곳이라 하면서도
벗고 사는 그들은 입었는지 벗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도 편하고
만남과 인사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생활 이라고하더라.
지켜야할 금기 사항도 있었는 데 까먹어버렸다.
아프리카에 밀수할 때 실물 확인 차 나이제리아와 니제르 국경부근의 어느
졍글 밀수전문촌락을 들렸던 어느 휴일 밀림 아주 깊게 들어가게 되어
아래만 가리고 사는 원주민을 만난 적이 있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이건만
그네들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더라 그냥 그렇게 편하게 대하는 데
오히려 보는 내가 어색했었다 그들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오래 년 전 불란서 대통령과 다른 나라 대통령인가 누군가와
사우나 탕 회담이 장안 화제가 되었고 무릎에 타월이 얹혀진
사우나 실의 두 사람 사진이 신문에도 실렸었다.
벗고 하는 얘기 그 상황 그 형편에서도 가식이나 허위 등의 위선이
가능할까 글쎄 가릴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데 가릴 수 있을까
어느 해 해운대 해수욕장에선 어느 국회의원님께서 수영복에 국회의원
뺏지를 달고 나왔다는 신문 가십을 본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섹스 심볼이라는 마리린 몬로에게 기자가 밤에 잘 때 입는 잠 옷을
물었더니 love portion no.9(?)이란 대답으로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잔다고 했단다.이런 게 자연이고 솔직함이고 편안함이고
있는 그대로가 아닐까
반면에 패션 디자이너들은 옷을 신분 지위 자신 문화 등을 나타낸다고
하여 여러 각도 관점에서 패션의 중요성을 제삼 제사 강조한다
휘장으로 장식으로 디자인으로 그들은 자신이 아닌 자신을 내가 아닌
다른 나를 얼마든지 창조할 수 도, 만들어 낼 수도 모방할 수도 있다.
물론 더욱 돋 보이게 한다든가 인상적인 개성을 창조한다거나 시대의
문화를 선도하는 등 셀 수 없이 많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적 열거할
수 없는 효과가 있다 패션으로 인해 전혀 엉뚱한 부류로 계급으로 직업으로
모양으로 달라져 버린다 실제와 사실이 가리워져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우리네 삶에서 부부간이라 하여 집에서 나체로 생활하는 커플이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될까 또 없다면 그게 왜 안될까,쑥스러울까,
아님 부끄러울까, 그것도 아님 챙피해서 일까 왜 쑥스럽고 왜 부끄럽고
왜 창피할까일본에서 남녀 혼용 대중 목욕탕을 만들었더니 남자들 밖에
안왔다더군
아담과 하와 그이들은 벌거벗은 채 그 동산에서 달리기도 했을 터이고,
그러다 넘어지기도 하고 또 사타구니를 다치기도 하고 또 그 상처를
손으로 만져 주기도하고, 목마를 태워주기도 했을 터이고, 엉덩이를 철석
철석 때리며 "이랴"하는 말타기도 했을 터이고, 말뚝 박기도 아 이건
못했을같고, 아담이 하와의 다리를 베고 눕기도 했을 터이고 하와가
아담의 배 위에 앉아 놀기도 했을 터이고, 때론 나무에 올라가는 상대를
서로가 밑에서 처다보는 경우도 있었을 터이고 또 올라 갈 때 히프를 받쳐
주기도 했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이겠나 서로가 물장난도 했을 터이고,
몸을 씻어주기도 했을 터이고, 닦아주기도 했을 터이고, 가위바위보로
업어주기 뿐만 아니라 무서워서 또 놀라서 실오라기 하나 없는 몸을서로
부둥케 안고 끌어 안기는 경우도 있었을 터이고, 서로의 그 부분을 만져보며
왜 다를까라고도 하지 않았을까,그럼에도 그들은어떠한 감정도 없었고
또 일어 나지도 아니했을것이다. 그냥 자연 그대로 였을것이다.
우리네 지금의 삶의 형태와 별로 다른 것이 없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요즈음과 같은 다이어트용 요가는 필요 없었을 터이니
비만시대 우리네처럼 양다리를 쫙 벌리는 운동이야 있었겠나만은 그래도
그 비슷한 스트레칭은 안했겠나, 또 모르지 사타구니에 벌레 물려
아담이 하와의 그 부분에 약초를 발라줬는지도, 아님 벌에 쏘인 아담
사타구니를 하와가 자기 입으로 혀로 침을 발라주고 빨아주었을 얻는지도,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벗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았었다.
벗고 살았어도 아무렇지도 아니했었다
사과를 따먹은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았고
부끄러워 가리기 시작했었다고 無誤한 성경이 말 하고있다
paraNNara백성(?)된 우리 모두는 우리들 세상에서의 위상이 보이지는
아니하나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희노애락을 더욱 현실 전부를 몽땅 다 함께 체험할 수 있다
의식할 수 있고 또 인식되어질 수 있는 그러한 공간에 우리 모두가
동시에 함께 드러내져 있다.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다 함께 꼭 같이
동일하게 나타 나져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의식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인식하는 또는 할 수 있는 부류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층의 차이 일 것이다
paraNNara에 사용되어지는 글자는 뜻을 마음을 전하는 기호 부호다.
그게 이웃에서 이웃으로 전달되질 때 전하는 자의 파장이 실린다
받는 사람이나 보는 자는 그와 동일 크기의 파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돌에도 아주 미미하지만 그런 파장의 의식이 있다고 한다
하물며 동일한 의식energy공간에 사는 아니 연결되어진 이웃끼리
그게 안통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못 느낀다 의식이 안된다 인식할 수가 없다 그냥 그렇다 건조하다
왜 그럴까 글쎄 그게 바로 감고 있는 두르고 있는 가리고 있는
장식 옷때문에 그렇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qqus탄 사기꾼이 그렇게 많다더니 어느새 벤츠가 사기꾼의 도구로
둔갑했단다 우리paraNNara백성만이라도 옷 벗어 던져 버리고
나체의 생을 꾸린다면 우리 이웃들의 분명한 의식과 인식들이 교환되고 또
합쳐지는 그런 멋진 창조 공간이 또 하나 형성되지 않을까
on界의 paraNNara가 off界 세상을 밝히는 단초로의 기능이 없을까
나만의 환상인가 공상인가 망상인가
(망상은 해수욕장이라던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