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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2. 12. 17:53 기본

"내 걱정은 말게. 사람이란 죽으면 잠을 자게 되는 법,
살아 눈뜨고 있는 이 순간을 어찌 헛되게 잠만 잘 수 있겠는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가장 충실하게 보낼 것이요."

왕실에서는 이미 병색이 짙은 그를 포기한 상태라 '그의 마지막 유언이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했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면서도 좀처럼 유언을 말하지 않는다. 어느 날
마침내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어 띄엄띄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거든 내 손을 관 밖으로 내놓아 모두들 볼 수 있도록 하시오."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초조하게 그의 유언을 기다리고 있던 신하들은 몹시 놀랐다.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쥐었던 대제국 帝王의 유언으로는 적적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다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단지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거머쥐었던
위대한 帝王도 떠날 때는 "이렇게"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뿐이오."
"열이 내리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소. 열은 내리게 되어 있소. 난 전진하고 싶소.”
그는 기어코 세상의 끝을 보기를 원했다. 전장에서 열한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건만
최후까지 향료와 알로에와 몰약(沒藥)의 땅’ 아라비아를 정복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위대한 정복자,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대제국의 지배자. 역사상 수많은 영웅들이
흠모해마지 않았던 대 제왕 그 이름 바로 알렉산드 대왕.

역사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고, 33세에 요절했으며,
이집트에서 인더스 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세웠던 정복자, 그리스 철학의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학문 철학의 맥으로부터
15세에 아리스토텔레스를 궁중 가정교사로 역사와 철학을 배우게 된다.
냉정함과 격정, 빠름과 느림, 무절제와 절제, 잔인함과 동정, 교만과 겸손을 번갈아
보여주는 알렉산드 였다. 스물 다섯 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수많은 전쟁을 통해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서아시아에 이르는 커다란 제국을 건설했다. 그와 그의 제국에서
동양과 서양을 포괄하는 ‘헬레니즘’ 문명이 태어났고, 왕위에 오를 때부터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원정을 결심하고 있었다. 성장하는 동안 늘 확실한 목표를 염두에 두었으며
전설의 고르디우스 왕의 매듭을 칼로 끊었다고 전해지지 않는가. 그리스의 사상과 관습이
멀리 빅토리아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 널리 전파되었다. 이는 참으로
알렉산드의 정복이 가져온 가장 두드러진 영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서로 다른
무기들을 결합해서 사용하는 데 비상한 재능을 보였을 뿐 아니라 사카 유목민이라든가
인도의 산악부족, 포로스의 코끼리 부대같이 새로운 형태의 전투방식을 사용하는 적들의
도전에 맞추어 전술을 변화 있게 구사하는 데도 뛰어난 전문경영인이었다. 그의 전략은
능숙하고 승전의 상상력이 풍부했다. BC 334년에 그는 마케도니아군(軍)과 헬라스
연맹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위해 소(小)아시아로 건너간 걸 시작으로.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었으므로, 군대를 돌려 BC 324년에 페르시아를 정복한 뒤 인도로
부터 술냄새를 풍기며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화신(化身)으로 페르세폴리스에 되돌아
오기까지. 짧은 왕위 12여년 동안에 10년 가까운 세월을 전장에서 살았다. 전투를 떠나면
불안했던 나폴레옹이 그의 영향을 받은 화신임을 폴루다크가 전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문득 솟아난다.

금년2004 2월25일 출국하여 아시아 존 열대 나라로 달랑 한 자루볼펜에만 의지하여
무작정 처 들어갔었다. 국내에 알려진 사실과 소문과는 달리 무수한 가능성과 시장이
내 앞에 열리오니 10년래 최고 더위라는 혹서 37~38도에도 정장으로 한 도시를 마음껏
폼나게 영웅스럽게 때론 미친놈처럼 마구잡이로 파 뒤집었다. 엄청난 보화가 땅 속에 그냥
묻혀있었고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었다. 더위를 마음껏 들어 마시면서
링거 꽂아가면서 온 관심을 몽땅 사로잡았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 뜨거운 탕 속으로
들어가면 일 순간 팍 죽어 버린다. 아주 묘한 쓰라림이 빨간 좁쌀 알처럼 온 전신을 특히
허벅지를 뒤덮은 땀떼기를 통하여 마약처럼 순간적으로 확 덮친다. 그 옛날 캠프 헨리
뒤에서 마리화나에 취할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강도는 100배나 더 강했다. 물론 지속
시간이야 이태원 소방서 뒤 나이제리아 깜둥이들이 밀매한다는 태국 고원 지대 원산의
몇 천분의 1초도 안돼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정말 형용할 수 없는 아주 묘한 엑스타시가
일순간 확 자극해버리기에 거의 실신 지경이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내 어릴 때 밭일
갔다온 엄마가 밤중에 그렇게도 열심히 끍었었구나란 생각에 나의 모진 불효가 이국 땅
열대의 밤을 울리기도 한다.

어느 정도 준비로 바닥을 다지고 현지 인을 박아두고 6월25일에 귀국한다. 귀국 후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계획하고 온 사업의 국내 시행규칙의 강화 개정으로 계획의
겨우 20~30%정도며 진행이 거의 불가능의 상황에 봉착해버렸다. 본의 아니게 방향이
다시 한번 수정되어 지고 7월 초순부터 대구 출장을 시작하여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집으로 돌아갔었다. 찾아온 또 다른 해외거래처buyer가 장기 체류를 하게되면서
9월2일 부터는 대구에 장기 출장으로 buyer와 함께 하고 오늘 1212까지 이른다.
오늘을 사는 이 세대 사람들이 위인전을 읽는 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해법의 제시자로, 또 하나는 인물 자체가 가지는 매력과 호기심 때문에 이라고 누군가가
얘기했었다.

지구를 20바퀴 이상 돌면서 이렇게 내 삶의 길을 가고 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지는
의도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또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다. 물론 해외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없다, 아예 기록이 없다, 법무부 출입국엔 있을 것이다. 시진 찍는다는 그것 내겐 참
고통이더라. 욘사마같은 미남이 아니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의식적인 순간의 정체가
너무 긴 느낌이고 공연히 부담스럽더라. freshman 시절 도서열람증에 사진 붙여
오라기에 그려서 갔더니 안된다 하더라. 일년 12달 중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한3개월
정도다. 뭘 구하고 뭘 찾는 순례의 여행인지, 언제까지 이어질 길인지는 모르나 난 이
길에서 기대를 보고 있으며, 즐거움을 캐내고, 성취를 맛보고, 도전을 받고, 자신을 키우고,

세계를 호흡하면서 푸르디푸른 그 꿈을 위해 오늘도 이렇게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05엔 또 어느 땅 어느 하늘 아래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나로는 전혀 알 수 없으나
우주를 주관하는 어떤 힘the invisible power이 창조주로 내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어미 독수리가 둥지를 획획 아주 무섭게 휘저어 제 새끼를 둥지에서 천애의 낭떠러지로
밀어 내버리듯, 어느 순간 느닷없이 미지 속으로 쭉 날려 보내진다. 내게는 삶의
신비다. 2004에 주어진 순례의 행진을 접을 때가 되어 가나보다.
흰옷에 흰 벤츠 타고 오직 하나 그에게 열광하는 군중을 위해 불덩이 쏟아지는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저 깊디깊은 곳으로 神을 찾아 만날 때까지 몇 날이고 헤매는 리비아
최고 권력자 카다피 대령 마냥, 나도 내 아버지 앞에 엎어져 그의 현현하심과 그와의
만남과 그의 환상 받기를 기대하고 또 받을 때까지 그렇게 또 몇 날을 씨름해봐야겠다.

( 전라도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새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꼬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꼬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아 와 이리 서러운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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