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없이 길을 나선다는 것도, 책을 아니가지고 집을 나선다는 것 그 어느 것도
참 머슥하고 뭐랄 수 없는 묘한 당혹스러움이다. 맥이 풀린다. 그러게 오늘의 출근길에도
뭘 볼까며 서가를 한 번 휙 돌아본다. 문득 데카메론이 굵은 글씨체로 다가 온다.
까까머리 학생시절에 순간적으로 불쑥불쑥 솟구쳐 일어나는 자지를 억세게 누르고
거칠게 문지르며 읽었던 그 책, 웬지 묘한 느낌이 인다.
14세기 중엽 페스트가 창궐하여 이태리 등 유럽을 휩쓸 때
죽음의 이빨을 피해 아름다운 별장으로 피신한 귀부인들과 청년들의 10간에 펼친
향락열전입담이다. 데카메론은 희랍어로 10일을 뜻한다.
인터넷시대 야동은 오직 표피 껍질만을 자극하기에 갈증날때 바닷물을 마시 듯
보면 볼수록 점점 더 많은 순간의 휘발성자극만 원한다. 알게모르게 진행되어지는 삭막
피폐황폐가 마침내 사막화로 심화되어 인성은 사라지고 전갈 하이에나 등만어지럽다
지철에 올라 mp3이어폰을 뽑는다. 가방의 데카메론을 펼쳐 든다.
까까머리 학생때 본 그런 데카메론의 느낌인지 그 강도는 가늠키 어려우나여전히 후끈하고 우습고 재미나고 상쾌한 기분이다.
전화라는게 하는 말이 장치를 통해 전파로 바꾸져 듣는 자에게 날아가
다시 장치를 통하여 음성으로 바꾸어져 귀에 들리는 고도의 변환과정을 거친다.
특히 데카메론과 같은성의환락서는 눈으로 들어온 글씨가 감정느낌정서기분 등의
신비의 복합장치를 통해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변환되기에강도와의미가최고최상에 가깝다.
깊은 내면으로부터의 변형은색다른 상상력으로 거대 동기열정이 유발된다.
언제 왔지 벌써 내릴 역이다.
책을 접어 가방에 넣고 다시 mp3이어폰을 귀에 꼽고 내린다.
계단을 오른다.
어, 이상하다. 무엇이 흘렀나 보다. 사타구니가 끈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