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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는 시간은, 이 시대는 이런 자의 출현을
탄샹을 열렬히 소리 없이 숨 죽여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 창조해낸 위기 찾아 온 기회. 순박함이
누구에게나 묻어나는 우뚝선 무식한 흔들림 없는
거목의 모습니 화면을 꽉채우더니, 형식 없고
거침 없고 편견을 상식을 비 웃는 멋쟁이 ...
반짝이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새침한 산새들이 지저귀며, 구수한 된장냄새가 온 동네를 휘감았을 경기도 안성의 외토마을, 해질 녘까지 하염없이 뛰놀던 ‘떡시루’들에겐 저마다의 꿈이 있었다. 떡시루 바닥에 숭숭 뚫린 구멍을 보며 ‘우리도 뭔가를 담아두지 말고 숭숭 빠져나가게 베풀며 살자!’고 다짐한 시골 개구쟁이들이 그네들 뭉치를 ‘떡시루’로 칭했다. ‘떡시루’멤버엔 ‘19’도 있었으니, 어제는 소설가를 꿈꾸다가 오늘은 시인을 꿈꿔보던 순박한 소년 최일구였다. | | 그 순박한 소년은 어느새 MBC 취재기자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카메라와 함께 출동하더니,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가 돼서 국민들에게 ‘뉴스의 파격’이라는 톡 쏘는 맛을 선사했다. “아직 가보지도 못했는데, 홍도가 울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 말이죠, 우길 걸 우겨야죠.” 이런 멘트를 보면서 통쾌함에 웃음 짓던 리포터 역시 그에게 톡! 쏘임을 맛보고 있었다. 그리곤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싱싱한 멘트를 툭툭 던지는 그의 모습에서 그야말로 유쾌, 상쾌, 통쾌의 하모니를 느낄 수 있었기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으며, 엔돌핀을 발산해가며 뉴스를 시청했던 그 날의 9시를 똑똑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날 밤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최일구씨와의 인터뷰는 괜한 손톱을 오물조물 물어뜯게 하며 리포터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순간순간 마음을 달래준 건 다름아닌 ‘떡시루’였다. 별명답게 그는 떡시루처럼 푸근하고, 따뜻할 거란 믿음. 인터넷뉴스센터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취재진을 맞은 그 목소리, 아…그 목소리! “오! 대학내일!” 그 우렁찬 목소리였다. | | 1년 6개월 / 그 적절한 주말 | 반 곱슬머리와 화사한 분홍빛 스트라이프 셔츠는 그가 발산하는 상쾌한 분위기와 참 잘 어울렸다. “아∼ 요즘엔 그래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보니까, 요 앞 아파트 상가 헬스장에서 운동도 하고 그래요. 힘이 부쳐서 걷기 운동 정도만 하지만…(웃음).” 최일구씨는 올 3월 앵커활동을 멈추고 보도국 인터넷뉴스센터의 취재에디터로 일하는 중이다. 이 쪽으로 자리를 옮긴 후 아이엠뉴스(www.imnews.com) 사이트의 대대적인 개편을 진행했고, 지금도 새로운 컨텐츠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취재기자와 앵커활동을 하면서 들쭉날쭉했던 일상에 비해 규칙적인 편이지만 보도국에서 생산된 뉴스를 다시 다루고,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하고, 외부 사이트와 제휴하는 일 등등 여전히 숨 가쁜 일과가 반복된다. 그런데 많은 이들에게 한참 ‘뉴스 보는 재미’를 맛보게 해준 그의 모습을 브라운관에서 다시 볼 수는 없는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땐 참 겁도 없이 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지금 다시 기회가 주어진대도 시청자들의 높아진 기대에 부응하긴 힘들 듯 해요. 건강상의 문제도 있고.” 30여 년 획일적이고 완고하던 뉴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로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었지만 사실 최 전 앵커는 편안한 진행을 했을 뿐 그 정도의 센세이션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칠순 노모도 이해할 수 있게끔 쉽게 뉴스를 진행하고 싶었을 뿐이다. “한국의 모든 앵커들이 저와 같은 방식으로 뉴스를 진행하는 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객관성을 유지하는 게 뉴스보도의 기본일 테니까요. 단지 한국어를 사용하는 방송에서 대화형 멘트를 시도했다는 실험적인 의의로 충분한 게 아닐까 해요.” 어쩌면 그의 말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쉬는 주말 저녁 이틀을 편안한 뉴스를 시청할 수 있었던 1년 6개월이 딱 적절했을는지도 모르겠다. | | 인생의 키워드 / ‘로켓트’ | 경희대 국문과 입학을 확정짓고 한가해진 고3 겨울, 그는 노래 하나를 만들었다. 그 이름하야 ‘로켓트를 녹여라’. 블로그(blog.imbc.com/19choi)에서 6월에 제작했다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의 카리스마와 가창력에 적잖게 감동한 리포터는 최일구 전 앵커 인생에서 이 노래가 얼마나 중요한 아이콘이 됐는지를 알고 또 한번 놀랐다. ‘모든 것이 귀찮아진 어느 오후 티켓을 산다/0시발 태양 로켓트/멀어지는 지구의 모습을 보며/다가오는 태양의 불꽃 보며/모든 것을 생각한다/저 드넓은 우주 한 구석에 떠있는/지구라 불리는 흙덩어리 위에서/왜 인간은 싸워야 하는가/웃으며 살자’ 심오한 내용인 듯 하면서도 유쾌한 기운을 내뿜는 이 노래를 듣는 사람이라면 다들 한번쯤 ‘어라? 뭐 이런 노래가 다 있지?’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로켓트’의 컬러풀한 기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이 노래로 덜컥 신입생 장기자랑에서 1등을 먹고 경희대의 스타가 되더니 군에 입대해서는 ‘노래 특기자’로 그 좋다는 연대본부대에 남게 되는 영광까지 얻었다. 그런 만큼 인생의 주요 시점마다 그를 대변하는 아이콘 ‘로켓트’에 대한 애정은 참으로 뜨거웠다. “LA에서 자수성가한 한 아주머니가 TV에 나오는 걸 봤어요. 그 사람은 늘 인디언 피리를 들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들고 다니면 처음 만나는 사람도 쉽게 관심을 보인다더군요. 그리고 쉽게 마음을 열고 다가온다고요. 대화의 매개체라고나 할까요. 제게 ‘로켓트를 녹여라’가 바로 그 매개체였죠.” 노래가 탄생한 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로켓트는 컬러풀한 그 기능을 다 하고 있다. 사람들과 접속하는 컬러풀한 매개체 로켓트, 더 이상 방송을 통해 만날 수 없는 그의 목소리는 로켓트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전파되는 중이다. | | | | 패기 넘치는 대학생 / 최일구군(君) | ‘로켓트’ 하나로 학교의 스타가 되어 대학생활을 개시한 최일구 전 앵커가 MBC보도국에 입사하게 되기까지는 사실 ‘무모한 도전’이 뒷받침됐다. 국문과 79학번 동기 중에서 그를 포함한 두명만을 제외하곤 모두 선생님이 됐기 때문. 그 일반적인 길을 과감히 접었다는 점에서부터 그의 뉴스 파격은 예고돼 있었을 것이다. “무모한 짓 많이 했죠. 그게 다 술 먹고 저지른 일이라 기억이 안 나서 그렇지.” 격동의 79학번, 패기 넘치는 대학생 최일구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요즘 대학생들은 참 빡빡하게 사는 거 같아. 우리 땐 땡땡이도 많이 치고 술도 많이 먹고 그랬는데, 요즘 대학생들은 너무 바빠.” 아이엠뉴스에 신설된 ‘캠퍼스리포트’꼭지를 통해서, 또 대학생 시민기자들의 모습과 같은 사무실에서 인턴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이란다. 투철한 사회의식으로 무장하고 띠를 질끈 동여매고는 눈만 뜨면 투쟁을 하던 그 시절 대학생의 눈에는 취업난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지금의 대학생들이 어떻게 보였을까. 사회 문제에 지나치리만큼 무관심한 채 자기 앞길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요즘 대학생들이 혹여 한심해 보이지는 않을까. “선배들의 어마어마한 진통 끝에 지금은 민주화 회복이 됐잖아요. 그러니 현실 참여의 수요가 없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죠. 우리 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학생들 잡아가는 일도 숱하게 많았고, 학교 앞엔 탱크가 즐비했으니 뭐~ 근데 지금은 바늘구멍 같은 취업관문이 대학생들 목을 조이니 그거 대처하는 것도 데모나 다름없지요.” 그 때는 그 때 나름대로의 고충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고, 지금은 또 지금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으리란 얘기였다. 그는 앵커 이전에, 기자 이전에, 취재 에디터 이전에 푸근한 선배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 | 유쾌한 사나이의 / 원천지 |  |
“한강시민 공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출현했습니다.” 최일구 앵커 특유의 음성과 비장한 표정을 잠시나마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영화 ‘괴물’의 카메오로 등장해 뉴스 속보를 전달하게 된 것.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거대한 카메라 두 대가 제 앞에 서더라고요. 실제 뉴스를 진행할 때 분위기랑은 참 달랐죠. 연기를 했다기 보다는 있는 대사를 읽은 것뿐인데 괜히 어색하고요. 영화배우도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 어떤 멘트를 했는지 궁금해서 한 번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요샌 48시간만 지나면 머릿속에서 자동 삭제된다면서 웃는다. 이렇듯 영화계에서 찾을 정도로 그의 멘트에는 확실히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진지하게 멘트를 날리는 그의 모습에서모든 사람들이 유쾌함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분명 최 전 앵커에게 녹아있는 에너지의 원천이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늘 유쾌함을 가슴에 품고 사는 분이셨죠.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데도 좁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아버지는 늘 우리 식구를 즐겁게 해주셨거든요.” 생전에 아들이 등장하는 인터넷 보도는 죄다 스크랩하며 경로당에 가져가 자랑하시던 아버지였다. 뉴스 진행하던 모습을 보셨더라면 동네방네 자랑하며 참 기뻐하셨을 아버지를 마음속에 고이 담아두고 있는 그의 입가에 애틋한 미소가 번졌다. 어느덧 MBC 보도국에 들어온 지 올 해로 20년 째, 이제 발로 뛰는 취재 기자 생활도 마감했으니 그동안 현장에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이론으로 정립하고 싶단다. “이번 2학기부터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에 다니게 됐어요. 두과목 듣는 목요일엔 정말 죽을 맛인데 여의도에서 퇴근하고 학교까지 갔다가 집에 가면 12시가 다 돼요. 그래도 간만에 모교 강의실에서 수업 듣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20여년 만에 학생이 된 최 전 앵커는 그 어떤 젊은이보다도 활력이 넘쳐보였다. ‘떡시루’시절 어느 일간지에서 한 기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파견된다는 사보를 보고 ‘아~ 멋있다!’하며 우연히 기자를 동경하게 됐지만 어느새 진득한 필연이 되어 전국을 누비게 됐다. 그에겐 우연을 필연으로 탈바꿈시키는 초능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소설가가 돼보겠다던 낭만적인 소년의 꿈도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블로그에서 ‘19생각, 19 유머소드’ 게시판을 살펴보면 감각 있는 글 솜씨가 가히 예술적이다. “어휴, 학교 졸업할 때 단편소설 50매를 써서 낸 적이 있었는데 소설도 정말 아무나 쓰는 게 아니던데요. 훗날 책을 하나 펴낼 수 있게 된다면 영광이겠지만 소설은 힘들 것 같아요. 허허.” 그는 그렇게 웃었지만 리포터는 또 다른 초능력을 발휘하게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로켓트를 녹여라’에 이은 울트라 스펙타클 판타지물이 나올지도 모를 일! MBC 인터넷뉴스의 UV를 최고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 셔츠 단추 넉넉히 푸르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인 취재에디터 최일구씨. 취재를 마치고 나서는 리포터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며 연신 “요즘 대학에선 대학내일이 대세야~”를 외친다. 다니는 곳마다 싱싱한 에피소드를 뿜어내는 그의 유쾌함이 ‘로켓트’를 타고 저 멀리 우주까지 퍼져나가기를 바라면서 닫히는 문 사이로 ‘최19’씨와 눈인사를 나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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