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9. 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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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기자의 '적정온도' |
그래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면, 역시 여름이 시작되던 그 때 휴일 아침을 흔들었던 ‘총기 난사’ 사건입니다. 사건의 잔혹성도 그렇지만, 가족들이 오열하던 표정이 잊혀 지지 않아서일까요. 그럴 때 고민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기자는 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는 말, 흔히 듣고, 쉽게 내뱉습니다. 하지만, 저런 슬픈 상황에서도 가슴만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요? 슬픔이 아프도록 피부에 와 닿는데 맨 정신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유가족들의 슬픔에 동화돼 감정에 휘둘리며 취재해도 되는 건가? 그러다가 중심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지나치게 냉정함을 유지하려다 차가운 기사를 쓰게 되는 건 아닐까? 같이 울다가 중요한 사실을 놓치는 건 아닐까? 감정 다스리랴, 취재하랴, 허둥대기 일쑤죠. 반대로, 엄청나게 흥분하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특히 집회 현장을 자주 가게 되는 저는 현장에서 불끈불끈 흥분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요. 전경을 향해 돌을 던지는 시위대나, 반대로 시위대를 두들겨 패는 전경들, 그리고 간혹 기자를 향해 날아오는 비난과 욕설들. 흥분에 연속이죠. 특히, 대놓고 욕설을 퍼붓는 분들을 만나다보면 저도 모르게 울컥해서 같이 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집니다. 취재하고 싶지 않은 대상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양분된 의견에 대해 취재할 때, 기사에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마음이 어쩔 수 없이 한쪽으로 기울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양쪽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차가운 머리를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겁니다. 아직 기자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 망설일 만큼 경험이 짧음에도 이런 갈등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부딪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부딪히게 될까요? 그럴 때마다 전 갈등하고 고민하게 될 겁니다. 경험이 쌓여도 늘 현장에 서면 같은 고민을 되풀이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한 카메라기자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산가족상봉장에서, 한쪽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다른 눈으로는 렌즈를 봤다’고. 저는 앞으로 ‘한쪽 손으로는 펜을 움직이고, 다른 손으로는 눈물을 훔칠 수 있는’, 그런 기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신지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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