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뉴질랜드>=연합뉴스) 고한성 통신원= 지난 26일 68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호주의 최고 부자인 케리 패커는 고졸 학력의 열등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학력이나 성적은 그의 사업 분야가 '채널 나인' 텔레비전, 데일리 텔레그래프 신문, '우먼스 위클리'
잡지 등 미디어 분야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확실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호주 언론들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때 두 번이나 낙제를 해 1년씩을 더 다녔을 정도로
공부와는 담을 쌓은 열등생이었다. 독서 장애를 갖고 있어 공부를 하려고 해도 제대로 할 수가 없기도
했지만 애초부터 공부에는 취미도 없었고 소질도 없었던 모양이다.워낙 공부를 못하다 보니 교실에서는
가깝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시간을 운동을 하면서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부는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도 생각해 포기해 버린 것이다. 패커 자신도 훗날 "학교 공부에서는
바보였다"고 토로했을 정도다.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그는 기자 출신의 할아버지가 처음 만들고, 아버지가
이어 받아 운영하고 있는 언론 사업의 최말단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데일리 텔레그래프와
우먼스 위클리 등을 찍어내는 윤전기에서 잉크 자국을 닦아내고 청소를 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회사에서도
가장 천한 일이 그의 몫이었다.아버지 프랭크 패커는 자식들에게 대단히 엄격한 사람으로 어린 패커는 불평
한 마디 못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그러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회사의 사령탑을 맡으면서 그는
학교의 열등생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아이디어와 타고난 승부사적 기질로 회사를 더욱
탄탄하게 이끌어갔다.
그 스스로도 도박사라고 불리길 좋아할 만큼 도박계의 거물이기도 한 그는 아버지로부터 회사 경영과 관련해,
동지를 배만하지 말 것, 적에게는 강경하게 대할 것, 다른 사람의 의견에 너무 신경 쓰지 말 것 등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배웠다며 그 같은 원칙에 끝까지 충실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그는 1m90cm가 넘는 키와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질병에 시달려온 약골이었다.어린 시절의 독서
장애도 물론 그 중 하나이고 다섯 살 때 기숙학교에 들어갔던 그가 여섯 살 때 소아마비로 9개월여 동안 학교를
중단한 것도 어린 패커로서는 큰 역경이었다. 어른이 돼서는 신장암 수술을 받고 담낭에 병이 생겨 고생을 했으며
여러 차례 심장마비를 겪기도 하고 신장 이식 수술도 받았다.심장마비로 8분 동안 의학적 사망판정을 받았다
전기충격요법으로 소생한 것은 의학계에서도 기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미디어 왕국을 더욱 알차게 꾸려가며 70억 호주 달러 규모의
개인재산을 모아 호주에서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오르는 한편 많은 돈을 불우이웃을 위해 흔쾌히 내놓는 마음씨
좋은 부자가 됐다.그가 말년에 벌어들이는 돈은 하루에 100만 달러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야말로
꼴찌가 일등이 된 것이다.
그래서 타임스, 데일리 익스프레스 등 영국 신문들까지도 그의 부고 기사를 국가수반과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고 호주 신문들은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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