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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필수 상식으로...

bukook 2005. 10. 14. 11:00


작품은 취향으로 선택일 수 있으나 노벨 문학상의

작가가 과연 어떤 인물인가를 보는 건 한 해의 필수

선택이 아닐런지요...

[노벨문학상 해럴드 핀터]2차대전 상처가 작품의 동력


해럴드 핀터는 1930년 런던의 동부 끝에 있는 해크니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해크니 다운스 문법학교를 다닐 때 영어와 연극에 두각을 나타내며 학교 연극 공연에서 주연을 맡았던 그는 왕립 연극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곧 그만두고 연극학교에서 스피치와 연기 등 배우 수련을 받았다.

아뉴 맥매스터 극단에 합류한 그는 1959년부터 배우와 시인으로 데이비드 배론이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영국의 각 지방에 산재한 레퍼토리 극장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1957년 핀터는 처녀작으로 ‘방’을 썼고 브리스톨 올드 빅 부속 연극학교에서 이 작품으로 선데이 타임스 학생 연극 경연대회에 참여할 당시 젊은 흥행사 마이클 코드론을 사로잡게 된다. 핀터는 코드론의 부탁으로 ‘파티’와 ‘벙어리 웨이터’를 집필했으며 바로 이 시기가 잠재되어 있던 극작가로서의 그의 능력이 고스란히 발휘된 때이기도 하다.

핀터의 배우로서의 무대 경험은 특히 관객과의 문제에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었으며 극작의 영감을 이론에서보다는 실제에서 얻고 있다. 핀터는 배우,극작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가로도 활동하며 국내외에서 전례없이 인정받고 있다.

1966년 ‘귀향’으로 CBE상을 받았으며 셰익스피어상,유럽문학상,피란델로상,데이비드 코헨 영국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국내외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런던의 퀸매리대학의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또 평생의 활동을 인정받아 로런스 올리비에 특별상과 파리에서 몰리에르 데 도뇌르도 수상했다.

현재 바르셀로나와 더블린,그리고 서울에서 그의 이름으로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으며 미국 탬파대학에서는 매년 ‘핀터 리뷰’가 간행되고 있다. 역사학자이며 귀족인 안토니아 프레이저와 결혼한 핀터는 현재 런던에 살고 있다.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