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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또 다른 "탈출행위"

bukook 2005. 12. 21. 15:16

Together Poster by Klaus Gerhart

공공 장소 공중변소의 무수한 낙서들 그 속에 "야 xx새끼야 낙서하지 마"라는

낙서는 낙서가 아니고 낙수인가. 좋다고 한꺼번에 나서서 꽃가루 뿌리며 우우우

환호하며 휘바람 불며 박수 치며 날뛰고또 나쁘게 방향이 선회될 조짐을 보이니

여기 저기서 모자 날리며 우우우 야유하며 팔뚝 휘저으며 또 즐거워하고, 아 참

따분하구나 이 멋진 년말에 난 내 자리에서 내일에 차질없이 잘하고 있는지 또

금년도 내 계획 목표는 10년을 당겼는지 미뤘는지 아님 이뤘는지...

[김창균칼럼] '황우석號'의 탈출 행렬

▲ 김창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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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1일 섀튼 교수가 황우석 교수와 결별을 선언했을 때 “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섀튼 교수는 황 교수와 더불어 사이언스 논문의 책임 저자였다. 또 황 교수를 ‘진정한 형제’라고 불러 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난자 파문 하나로 파트너십을 깨겠다니….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 일은 ‘황우석호(號)’가 암초를 향한 충돌 코스에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이었다. 항로(航路)의 결말을 알아챈 섀튼 교수가 배에서 제일 먼저 뛰어 내린 거였다.

이후에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때마다 황우석 선장과 선원들은 “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12월에 접어들면서는 심상치 않은 징후들이 나타났다. 황우석호의 엔진 격인 세포줄기 몇 개에 결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도 큰일이었다. 그러나 남은 엔진으로 항해는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마침내 12월 15일 “줄기세포가 없다”는 굉음이 들려 왔다. 황우석호에 꿈을 실었던 국민들은 온몸이 휘청거리는 충격을 느꼈다. “배에 엔진이 없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었다. 사이언스 논문 저자 25명 중 황 교수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으며, 한 달 전 난자 파문 때는 눈물까지 흘리며 황 교수를 감쌌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두 번째로 배에서 탈출한 것이다.

기자회견 공방이 벌어졌다. 황 교수는 “줄기세포는 남아 있다. 만약 남아 있는 줄기세포가 가짜라면 누군가 바꿔치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그 범인은 미즈메디병원 사람일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덧붙였다. 배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건 딴 사람 책임이라며 황 교수 자신도 배를 떠날 구실을 마련한 것이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노 이사장은 황 교수가 줄기세포를 만들 수 없었다고 보는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그러면서 또 한 차례 흐느끼며 “황 교수는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황 교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줄기세포를 연구한다면서 줄기세포가 통째로 뒤바뀔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한 책임을 면할 길은 없다. 노 이사장 역시 ‘줄기세포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여태껏 줄기세포 논문의 두 번째 저자라는 영예를 즐겨온 일을 변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회견을 지켜본 미국 워싱턴 포스트 기자는 “생물학 검증, 멜로 드라마, 실제 상황 TV 프로그램이 뒤범벅이 된 광경이었다”고 썼다. 줄기세포의 진위를 알기 위해 회견장에 갔는데 한 사람은 절도사건을 고발하고, 또 한 사람은 신파극을 벌이니 황당했다는 얘기다.

회견 후 또 다른 논문 저자는 “줄기세포가 뒤바뀌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황 교수 주장을 반박했다. 이제 ‘황우석호’에서 내리겠다는 얘기다. 얼마 전까지 황 교수를 주변에서 엄호하던 다른 저자들은 침묵 속에 몸을 숨겼다.

줄기세포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는 “황 교수가 줄기세포 실용화에서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10년을 거짓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후 기술 수준에서나 가능한 일을 목표로 정해 놓고 결과를 꿰맞췄다는 추측이다. 1912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타이타닉호가 세계 최첨단 여객선의 성능을 과시하겠다는 스미스 선장의 과욕으로 무리한 속도를 내다 암초와 충돌한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평행선 스토리는 거기까지다.

스미스 선장은 사고 후 침몰까지 160분 동안 선원들을 지휘하여 2201명의 승객 중 711명을 구명정에 태워 탈출시킨 뒤 타이타닉과 운명을 함께했다. 반면 ‘황우석호’는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구명정을 챙기고 나섰다. “아직 희망을 버리지 말고 기다려 보자”는 승객들을 침몰해 가는 배 위에 남겨둔 채.

김창균 논설위원 ck-kim@chosun.com

입력 : 2005.12.20 19:04 35' / 수정 : 2005.12.20 19: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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