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금까지 유례가 없던 규모의 자금을 투입, 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 조성에 나선 것은 한국판 실리콘 밸리를 완성,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이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차세대를 넘는 '차차세대' 반도체 기술 부문에 경쟁업체보다 일찍 투자하고 생산 용량도 대폭 늘려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 초일류 종합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메모리시장에서 3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과감한 투자로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한 삼성전자는 앞으로도 선제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열린 화성 2단지 기공식에서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1974년 총체적인 경제 불황기에 시작한 반도체사업이 지난 한 세대 동안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결국 반도체 30년 신화를 창조해 냈다"고 평가하고 "불굴의 도전정신과 끊임없는 기술개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다음 세대에도 새로운 성공신화를 이룩해 내자"고 역설했다.
◇330억 달러, 어디에 어떻게 쓰이나= 약 34조원이 투입되는 곳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총 48만평 규모의 화성 반도체 단지 중 현재 가동 중인 19만평을 제외한 29만평에 달하는 미개발 부지다.
이 부지에는 올 5월에 매입 완료한 동탄 17만평 부지가 포함돼 있다. 4개동의 건물에 12인치 웨이퍼 이상의 반도체 라인이 단계적으로 총 8개 들어선다. 4개 건물 중 2개 건물은 현재 상용화된 12인치 웨이퍼보다 커진 16인치 또는 18인치급 대형 웨이퍼 도입을 감안해 라인 규모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는 기흥단지에서 가동 중인 메모리 및 시스템LSI 라인 11개와 기존 화성 1 9만평에서 가동 중인 5개의 메모리 라인을 합치면 전체 24개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확보하게 된다.
이번 계획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은 차세대 나노 기술 등 미래 반도체 기술의 지속적인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R&D 라인(NDR 라인)을 따로 짓는다는 것이다. 이 라인은 8600억원을 투자해 복층 팹과 9층짜리 업무시설이 혼합된 연면적 3만5000평 규모의 초대형 복합형 반도체 연구시설로 조성되며, 8개의 신규라인과 함께 이번 화성 신규단지 29만평 부지 내에 들어서게 된다.
NRD 라인은 2006년 5월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며, 4기가비트 및 8기가비트 용량의 대용량 D램과 32기가비트(차세대) 및 64기가비트(차차세대) 이상의 낸드 플래시 제품을 개발한다. 적용되는 생산공정도 올해 개발한 50나노 기술의 차기 공정기술인 40나노급 기술개발과 그 다음 세대 기술인 30나노급 기술 개발까지 대응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우수 연구원 5000명이 투입된다.
NRD 라인 건설이 완료되면 삼성전자는 기존 P램, F램 등의 뉴 메모리와 D램, 플래시, CIS 등의 차세대 메모리 및 시스템LSI 제품군을 연구 개발해 온 기존의 5개 R&D 라인과 더불어 총 6개의 R&D라인을 확보하게 된다.
2012년이면 기흥과 화성사업장은 R&D, 생산, 영업, 지원시설이 총망라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로 완성된다.
◇선제 투자의 위력은 얼마나= 1985년 삼성은 처음으로 반도체 매출1억달러를 넘어섰다. 95년 83억달러로 증가한 매출은 지난해 163억달러로 증가했다. 20년만에 160배 이상 증가한 것. 매출 순위도 42위에서 2위로 껑충 뛰었다.
여기에는 삼성 특유의 선제 투자전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2년 세계 처음으로 8인치 투자를 결정해 1993년 메모리 업계 1위에 올랐고 2001년에는 일본 업체들이 주저하던 12인치 메모리 양산라인을 업계 최초로 도입, 1년만에 시장점유율을 18%에서 25%로 늘렸다. 삼성의 독주가 시작된 계기였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선제투자 계획을 밝히고 나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메모리 시장의 움직임이 반도체총괄 황창규 사장이 2002년에 '메모리 신성장론'을 통해 예측한 것처럼 올해를 기점으로 모바일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읽고 삼성이 단행했던 투자결정은 반도체 업종의 특성인 '타이밍'을 고려한 절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규모가 커진 이유는= 이번에 발표한 330억달러의 투자 규모는 작년 12월 삼성전자가 제시한 25조원보다 약 9조원이 증가했다. 투자기간이 2010년에서 2012년으로 2년 늘어난 것을 감안할 때 연간 투자 규모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5월 동탄 부지 매입이 최종 성사됐고 또 부지사용을 규정한 관련법안도 변경돼 투자계획이 보다 구체화됐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이처럼 천문학적인 투자규모에 유난히 '방점'을 찍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X파일 문제, 이건희 회장의 국감 증인채택, 금산법 논란 등이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이 국면전환용으로도 이번 투자를 활용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34조원의 투자는 부품, 장비산업뿐 아니라 고용 등 국가경제 전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여건에서 삼성의 대규모 투자는 큰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삼성 관계자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 본연의 역할에 전념하면 결국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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