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 맘으로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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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현대그룹 현정은(玄貞恩·50) 회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는 지금 시아버지인 고(故)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과 남편인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 “핸드백 열어보시라요”
지난달 31일 오전 7시 반 북측 출입국사무소. 현 회장은 생각지도 못한 봉변(?)을 당했다.
오전 10시로 예정된 금강산 온정각 면회소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왔지만 북측의 응대는 쌀쌀하기만 했다.
북측은 현 회장에 대해 일반 관광객보다 더 까다로운 입북 심사를 했다. 현대그룹 간부들은 당황했다.
“지금까지 금강산을 지켜낸 사람이 누구인데….”
하지만 누구도 북측의 ‘용납하기 어려운’ 처사를 막을 수 없었다.
북측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현 회장에게 핸드백까지 열라고 요구했다. 수차례 북한을 드나들었지만 처음 있는 일이다. 현 회장을 수행했던 현대아산의 한 임원은 북측의 거부로 아예 북한 땅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인사는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부회장을 내친 데 대한 북한의 앙갚음처럼 보였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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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에 없던 에쿠스 밀담
금강산 면회소 착공식 행사에서도 현 회장에 대한 북측의 냉대는 계속됐다.
현 회장의 자리는 맨 앞줄 15명 가운데 왼쪽 끝부터 윤만준(尹萬俊) 현대아산 사장, 이지송(李之松) 현대건설 사장에 이어 세 번째에 배치됐다. 대북사업을 하는 현대그룹의 ‘총사령탑’인데도….
발파 행사와 기념 삽질까지 끝낸 현 회장은 숙소인 금강산호텔로 가려고 했으나 북한적십자회 장재언(張在彦) 중앙위원장이 길을 막아섰다.
기자들이 다가가자 두 사람은 현 회장의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200m 떨어진 용천마을 입구까지 갔다. 차 안에서 10여 분 동안 예정에 없던 밀담(密談)이 이어졌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뭔가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줬을 뿐이다. 현 회장은 차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 말이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 남편 유골 뿌려진 금강산 신계사 찾아
지난달 31일 밤. 현 회장은 금강산호텔 12층 하늘라운지(스카이라운지)에서 최용묵(崔容默·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등 그룹 주요 간부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을 못하는 그는 얼음 몇 개를 띄운 물잔을 들었다. 참모들은 현 회장이 아랫사람들에게 덕장(德將)보다 더 좋은 복장(福將)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날 오전 현 회장이 겪은 일 때문에 모두 씁쓰레한 분위기였다.
1일 아침. 금강산에는 비가 조금씩 내렸다.
현 회장의 차는 일찍 금강산 신계사로 향했다. 남편의 유해를 뿌린 곳이다.
오전 11시부터 열린 제2온정각 개관식 때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행사장 옆엔 도올 김용옥(金容沃) 씨가 쓴 정몽헌 회장 추모비가 서 있었다.
귀경길에 만난 현대 고위 관계자는 “회사 경영권을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북측의 태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답답해했다.
서울로 향하는 현 회장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실타래처럼 엮여 순탄치만은 않은 대북사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금강산=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