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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창녀를 알아

bukook 2006. 2. 2. 08:14
성매매 여성들의 아픈 과거가 올곧이 적히다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 수기집 <너희는 봄을...> 펴내
▲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산한 성매매 집결지 골목 풍경. 한 성매매 피해 여성은 수기집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에서 이곳에서의 기억을 "정육점 불빛처럼 붉었던 조명불빛만 떠오르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 여성신문

ⓒ 살림
"나는 사람일까? 아니면 동물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어떤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때의 나는 어떤 의미도 없는 그런 것에 불과한 거 같다. 형상은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한 인간…."

부산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인 '살림'에서 펴낸 수기집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에 실린, 한 여성이 '난 단지 여자일 뿐이다'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잊고 싶은 과거가 고스란히 담긴 아픈 책이다. 하지만 이들에겐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지탱해줄 거울 같은 책이기도 하다. 살림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수기와 인터뷰가 실려 있다.

살림은 한국여성기금지원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 3~7월 사이 총 16회의 글쓰기 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이를 통해 완성된 글을 책으로 엮었다. 여성들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나 '정육점 불빛처럼 붉었던 조명불빛만 떠오르는 곳'으로 남아있는 성매매 피해 경험들을 어렵게 술회해 놓았다.

책에는 여성들의 갖가지 사연이 담겨 있다. '세상이 모르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성매매여성, 그러나 우리가 결코 몰랐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고, 글로써 타인이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았으면 한다"면서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가늠해보고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고 적혀있다.

"성매매는 그 공간을 사는 여성들에게는 지속적인 폭력이자 '일상'인데, 일반인들이 이런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성매매문제를 쉽게 여성들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여성들이 재빨리 탈성매매하지 못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글쓰기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여성은 다음과 같이 감정을 털어놓았다.

"내가 놀란 것은 다름이 아닌 그들의 솔직한 표현들이었다. 쓴 글을 발표하는데 바로 감정이입 되어 눈물 흘리고 공감하는 데서 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했다. 내가 만났던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이들만큼 공감능력이 뛰어난 분들은 드물었다. 그래서 만나는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즐거웠으며 가슴 아팠다."

'쓰레기통에서 피어난 장미'라는 제목의 글을 쓴 여성은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열심히 일을 했다. 2004년 8월달, 다시 죽자고 생각했다. 팔에 피가 흘렀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하늘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청소 이모가 알고 다시 119차를 불러서 병원에 갔다. 정말 싫었다. 그래서 일주일 뒤에 다시 일을 했다. 그리고 9월이 됐다.

정말 남자들이 싫었다. 다 싫었다. 남자도, 가족들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리고 돈도 다 싫었다. 나 자신도 싫었다. 성매매법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다 싫었다. 10월달,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나의 팔에 칼을 댔다.

술 먹고, 죽고 싶어서 칼로 하나, 둘, 셋, 그리고 하나 하나…. 기분이 좋았다. 나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많이 행복했고, 많이 아팠고, 그리고 쓸쓸하고 눈물이 흐르고, 미친 짓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여관발이, 다방, 룸싸롱, 술3종 그리고 완월동. 정말로 너무 싫었다."

한 여성은 성매매 업소에서 벗어났던 경험을 '나는 꽃 피울 수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손님을 보내고 검진소에 가서 검진을 받고 사랑니 때문에 남자사장과 밖에 있는 치과에 갔다. 치과 근처에 쌀집이 있었는데, 남자 사장은 쌀집 사장과 친해서 쌀집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간다는 것이었다. 나를 보고 혼자 들어가라고 했고, 나는 이때다 싶어 잽싸게 뛰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유난히도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차 안에서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한참을 생각한 후 마침 생각나는 곳이 부산역. 기사 아저씨에게 부산역으로 가자고 했다. … 여관에서 30~40분 정도 숨을 돌리고 가지고 있던 '살림' 명함을 보고 전화를 했다. 나의 담당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도망쳐서 부산역 근처 여관에 있다고, 도와달라고 울부짖었다."